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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산신도(山神畵)

   산신도는 사찰 산신각에 위해지는 족자그림이며 산신을 상징하는 늙은이가 범과 동자를 거느리고 앉아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산신은 경전에 없는 한국 고유의 신이며, 절이 대개 깊은 산중에 위치한 데서 비롯된 부수신앙으로 해석된다.   경전에 없는 존재라 하여 한때 철페론이 일었던 산신도는 불교토착화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다.   성립의 연대는 조선조 전기의 고승문집에 언급이 전혀 없는 점으로 미루어 까치호랑이 그림에 비해서 뒤떨어지리라 짐작된다.

산신도

 

   부처님을 모신 사찰 안에는 부처를 모신 법당 이외에 다양한 건물들이 있다.   산신각은 신령스러운 산신을 모셔 놓은 곳이다.   산신각은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곳으로 불교에 토착신인 산신령을 수용한 것은 70% 산지인 우리나라의 특성과 깊은 관계가 깊다.   예로부터 산에 대한 신앙이 깊었고 단군신화에서도 환웅이 나라를 열기 위해 처음 내려온 태백산도 산이었고, 후에 단군도 산에 들어가 산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 가야의 김수로왕이 강천 하였던 곳도 구지봉이라고 전해지며 역사적으로 왕조의 시작은 산과 관련이 많이 있었다.   산신은 이런 이유로 토속신앙으로 많이 믿어졌으며, 어느 시대에서나 산신에 대한 믿음과 경의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는 삼산오악에 각각 대사(代祀)와 중사(中祀)를 올렸으며, 삼산(三山)은 골화산. 나력산. 혈례산을 이르며, 오약은 토함산. 계룡산. 태백산. 지리산. 부악산을 말한다.   또한 설악산, 화악산, 감악산, 상악산 등 24 산에는 소사를 올렸다고 한다.   이것은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진다.   고려 때는 재변과 위기 때마다 오악명산에 제를 올리며 빌었으며,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에도 산에서 제사를 지냈었다.   조선시대에는 오악과 오진에 제를 올렸다고도 한다.   오악은 지리산 남, 오대산 북, 금강산 동, 묘향산 서, 삼각산 중을 뜻하며 오진은 오대산 동, 구월산 서, 속리산 남, 장백산 북, 백악산 중를 말한다.   

 

   민간에서는 전국 어느 산이나 산신을 모시고 산신당을 두었으며, 소원을 빌고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였다.   산신제는 동제로 발전되었고, 토속신들을 불교에서 자연스럽게 포용하며 산신령을 수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사찰 내에 산신각을 조성하게 되었다.   산신은 영물로 알려져 있는 호랑이와 함께 백발노인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산에는 호랑이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산신과 함께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 자체가 산신령으로 표현되기도 하였고 <<후한서>> 동이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으로 섬겼다는 기록도 있다.

 

   산신은 유교와 도교에서 다르게 나타나는데 도교의 산신은 하얀 수염과 벗겨진 머리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손에 하얀 부채나 불로초 등을 들고 있기도 하고, 영주산. 방장산. 봉래산 3개의 산이 주로 배경으로 묘사되었다.   유교에서는 머리에 유건이나 복건 정자관을 쓰거나 지팡이를 들고 있다.   앞에는 책이나 대나무 등의 장식물이 놓이고 차를 우려내는 도구들도 함께 묘사되기도 한다.   고유 산신들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모습이 변화되며 삭발한 스님이 <<법화경>>을 들고, 적록색에 금박, 노란 문양의 옷을 입은 모습이다.   옷은 스님들의 가사를 변형한 것이다.   산신과 함께 동자가 등장하는데 과일이나 차 등을 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산신은 사찰에서 삼성각에 모셔지는데 삼성각은 산신과 칠성, 독성을 한자리에 모셔 놓은 곳이다.   칠성신은 중국 도교의 신으로 민간에서 숭배하던 별신이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별을 통해 점을 칠 수 있다고 믿었고 칠성은 어린아이의 명을 길게 해준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조선 인조 때 우리나라에 칠성신앙이 널리 퍼졌다고 알려져 있다.   청나라 태종은 병자호란 때 인조의 항복을 받고 도교를 숭배하도록 압력을 넣고 그 후 민간에 널리 전파되었다.   독성(獨聖)은 스승 없이 혼자 스스로 깨달은 성인이나 나반존자를 일컫는데, 조선 말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이 퍼져나갔다고 한다.   나반존자가 나타나 중생들에게 재앙을 없애주고 복을 주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칠성과 독성은 산신과 함께 산식각에 모셔지기도 하지만, 큰 절에서는 칠성각과 독성각을 별도의 건물에 모시기도 한다.   

 

   

 

 

 

 

참고문헌

1.   이영수, <<한국의 민화 I >>, 한국자료원, 2015

2.  Naver 지식백과, 한국의 박물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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