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도는 농경 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유래가 깊은 그림이다. 풍속(風俗)은 옛날부터 그 사회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서의 습관이나 평범한 모습 행사나 놀이, 종교적인 의례 등에 관한 것을 그린 그림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 속화(俗畵)라고도 불렀는데 속(俗)은 낮다, 저속하다, 저급하다, 세속적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속화는 청동기 시대 암각화에서 땅을 파는 남자를 새겨 풍요와 다산을 기원했다. 삼국 시대 풍속화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의 관세음보살도, 지장보살도, 아미타여래도 등 불화를 거치며 조선시대에는 독립된 분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오랜 시간 그 맥을 이어오며 내려왔다.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풍속화는 대부분 정겨운 서민들의 생활을 소재로 풍습이나 세태, 연중행사 등 여러 가지 생활 모습을 자연과 함께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대부분의 민화 속 풍속화는 서민들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 모습과 일터의 전경을 묘사하고 있다. 주변의 배경은 과감히 생략하면서 인물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풍속화에서는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는 등의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일상적인 서민들의 농사짓는 장면을 그린 경직도(耕織圖)를 비롯하여 사대부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그린 평생도(平生圖), 그리고 설화적인 성격을 갖는 효자도(孝子圖)가 포함된다. 경직도는 안락한 궁궐 생활에 젖어 있는 통치자로 하여금 농부와 누에 치는 여인네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시켜 스스로 근검 절약하게 하고 바른 정치를 펴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감계요(鑑戒用)으로 그려진 가장 오래된 그림은 남송 때 시어잠(時於潛)의 현령을 지낸 누숙(樓琡)이 고종에게 그려 바친 일명 <누 숙경직도>이다. 이것은 <<시경>>의 빈풍 칠월 편(賓風七月編)을 그린 <빈풍칠월도>를 모범으로 하여 보다 체계화시킨 그림이다.
평생도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념이 될 만한 경사스러운 일들을 골라 그린 그림이다. 벼슬을 지낸 인물의 공적을 기리고 중요한 벼슬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제작된 것이어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출세관과 인생관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주로 돌잔치, 글공부, 혼인, 과거 급제, 벼슬살이, 회갑, 회혼 등의 내용이 그려지는데, 돌잔치 등의 통과 의례는 사람마다 거의 공통되는 모습이라 비슷한 형식으로 그려지지만 벼슬살이는 관직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데, 주로 부임이나 행차 장면이 그려진다. 보통 8폭 병풍으로 꾸며지며 석판화로 대량 제작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풍속화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성행하여 당시의 통과 의례 전모와 관직 생활을 엿보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대표작으로 홍이상(洪履祥)의 일생을 그린 김홍도(金弘道)의 <모당평생도(募堂平生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있다.
유교의 윤리관이 뿌리 깊게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효를 인간됨의 최고 덕목으로 여겼다. 조선시대의 민화 중에 유명한 효자와 그에 대한 고사를 그려 놓은 효자도가 많이 있다. 효자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맹종의 읍죽도(泣竹圖)와 왕상의 빙리도(氷鯉圖)가 있다. 읍죽도는 오(吳) 나라 때 맹종이 병든 노모의 약을 구할 돈이 없어 눈이 쌓인 대나무 숲에서 울고 있었는데, 눈물이 떨어진 곳에서 죽순이 돋아나와 그 죽순으로 노모의 병을 고쳤다는 설화를 그린 것이다. 빙리도 소문난 효자인 왕상이 엄동설한에 두꺼운 얼음을 깨어 잉어를 잡아 부모를 공양했다는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이 외에도 늙은 부모를 즐겁게 하기 위해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나 나이 들어 음식을 씹을 수 없는 늙은 시어머니에게 젖을 주고 있는 며느리의 그림 등도 효자도의 소재가 되었다.
조선시대 영정조 시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풍속화, 속화가 많이 유행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선비들의 사상이나 자연 풍경을 주로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면 후기에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에 대한 그림을 주로 그렸다. 대표적인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이 손꼽히며 그 시대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정감 있고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이 그려졌다. 김홍도는 조선 후기 변화된 사회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많이 그렸고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도 이용되고 있다.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는 정조의 어진과 왕실 행사 등을 기록하는 그림도 그렸다. 그 시대 유행한 씨름에 대해 그린 <씨름>이 대표작이며 흙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 모습과 소가 쟁기질하는 생활 모습이 그려진 <논갈이>, 어린 아이들이 서당에서 훈장과 글 공부 하는 모습이 담긴 <서당> 등 일반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신윤복은 조선시대 여인들의 생활 모습을 많이 그렸으며 대표작으로는 <미인도>를 들 수 있다. 풍속화 속화는 정조에서 순조 초까지 절정에 이르렀다가 점차 쇠퇴하였다.
참고문헌
1. 윤열수, <<KOREAN Art Book 민화 II >>, 예경,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