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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간송 전형필

   전형필(1906~1962) 선생은, 호는 간송(澗松)이며 서울 종로에서 출생하였다.   부유한 집안 환경으로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문화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29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며 상속받은 800만 평이 넘는 거대한 재산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게 넘어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내 문화재를 구입하는 데 사용하였다.  사재를 털어 국내 거간꾼과 일본인 수장가를 찾아다니며 우리의 문화재를 구입하였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호하고 수집하였다.   1932년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하였고 일제 강점기에 많은 문화재가 일본으로 유출되거나 파괴될 위험에 처해 있던 상황에 문화재를 되찾고 보호하였다.   문화재 보호 활동은 단순한 수집을 넘어 한국의 문화 정체성을 지키고 중요한 유산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전해지고 있다.

전형필
출처: 네이버캐스트, 간송 전형필

   전형필 선생은 1938년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 서울 성북동에 간송미술관 보화각을 설립하였다.   간송미술관은 한국의 최초 사립미술관으로 역사적으로 가치 있고 예술적 가치를 지닌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작품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훈민정음해례본, 고려청자, 조선 백자, 정선의 인왕제색도, 신윤복의 혜원풍속도첩 등이 있다.   특히 1935년에 훈민정음해례본을 구매하여 보존, 한글의 창제 원리와 용례를 설명하는 소중한 문헌으로, 현재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6.25 한국전쟁 이후 1953년 남아있는 소장품으로 미술학자들과 박물관을 계획하였고, 부친의 유언으로 현재 보성중학교와 보성고등학교를 인수하는 등 교육 사업도 하였으나 1959년 엄청난 재정 사고가 발생 그 빚을 갚기 위해 어려움을 많이 겪어야 했다.   재단에서 빚을 갚지 못해 학생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팔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팔아 돈을 댔다.   서화 도자기 몇 점만 팔아도 해결할 수 있었으나 전형필 선생은 끝까지 문화재를 지켜 냈다.    재단의 빚을 갚은 후 급성 신우염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다 1962년 향년 55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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