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의 <몽유도원도>는 한국 미술 중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그림으로 첫 번째 꼽히는 그림이다. 조선 전기는 남아있는 작품이 얼마 되지 않고 작가의 수도 많지 않고 자료도 적은데, 완벽한 보존 상태로 안견의 대작 <몽유도원도>는 존재 자체로 회화사에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희소성의 조선 초기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작가와 제작동기, 제작 시기 등 다양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회화사를 구성 함에 큰 역할을 한 작품이기도 하다.
<몽유도원도>는 세종의 둘째 아들 안평대군(1418~1453)이 어느 여름날 밤 꿈속에서 거닐었던 도원(桃源)의 풍경을 안견에게 설명하고 3일 만에 완성된 작품이다. 도원(桃源)은 무릉도원, 유토피아, 이상향을 상징한다.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이 1미터가 넘는 대폭의 화면에 3일 만에 그린 작품인 것이다. 그림 뒤에는 명필로 유명한 안평대군이 그림에 대한 내용을 직접 글로 남겼다.
"이제, 가도(안견의 자字)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니, 예전부터 전한다는 그 도원도( )와 같은지 모르겠다. 훗날 보는 사라미 옛 그림을 구해서 내 꿈과 비교한다면 반드시 가타부타 말이 있을 것이다. 꿈이 깬 뒤 3일 만에 그림이 완성되었기에 이 글을 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프랑스 국보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중국의 국보로 꼽히는 곽희의 <초춘도(初春 )>와 견주고도 남을 대한민국의 국보로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그림이다. 일제강점기 나이토 고난(1866~1934)은 몽유도원도를 "북송시대의 그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15,16세기를 서양의 르네상스라고 한다면 북송시대(960~1126)를 동양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다. 북송시대 곽희의 <초춘도>는 중국의 보물 중 보물로 평가된다. 나이토 고난은 <몽유도원도>을 북송시대 그림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는 작품이라고 한 것이다. 먹 하나로 산수를 표현하는 산수화는 북송 때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그림을 보면 왼쪽부터 말을 타고 들어가는 도입부와 도원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험한 산들이 있는 중간 부분을 거쳐 폭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분지로 보이는 곳에 도원이 펼쳐진다. 도원으로 가는 과정과 도원의 모습을 이어 그리면서 이 두 풍경의 묘사하는 시각을 다르게 표현하였다. 왼쪽부터 시작되는 도입부는 보통의 산수화처럼 정면에서 본 것처럼 그렸고, 바위를 지나면서 펼쳐지는 도원 풍경은 위에서 내려다본 부감법(俯瞰法)을 적용하였다. 한 그림 속에 두 가지 시점을 적용한 것은 몽중(夢中), 몽중몽(夢中夢)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다른 시점을 적용 한눈에 나타낸 것이다. 그림 속 동굴은 그림 중간에 폭포가 시작되는 부분 위쪽의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을 지나 확 트인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 오른쪽 끝의 위쪽에 험해 보이는 바위를 그려 놓고 그림의 아래쪽 개울에서 오른편에 많은 바위들을 그려 넣었다. 복숭아꽃 피어 있는 평화로운 도원은 동굴 속에서 쳐다본 경치처럼 표현되었다. 웅장한 바위 표현의 대담함과 집 주변의 대나무 등의 섬세한 표현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큰 화면으로의 감동을 전하며, 다시 그림 속 부분 부분을 충분히 관찰하게 한 다음 그림 전체를 기억하게 한다. 꿈속이라는 상상 속 풍경을 이야기로 듣고, 실재하는 듯한 풍경을 3일 만에 큰 화면에 웅장하면서 몽환적이고, 마치 실경 산수인 듯 섬세한 대작 <몽유도원도>는 책으로 본 그림조차도 계속 들여다보면 신기하게 어느덧 그림 속 한 점에 불과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참고문헌
1. 윤철규, <<조선 회화를 빛낸 그림들>>, 컬처북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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