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예술

조각보와 오방색

   옛날에 옷감은 돈이었다.  한 필, 두 필로 헤아리는 크기는 고액화폐였던 까닭에 서민은 쪼가리 옷감이나마 흔하게 쓰기를 바랐다.   마름질하고 남은 자투리나 해진 옷의 성한 부분은 오려서 간직해 두었다.   그러면 어디에든 요긴하게 쓸 곳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색색가지 조각 천이 모여지면 조선의 여인은 이리 재고 저리 견주어 아름다운 보자기를 만들었다.   굳이 색상을 맞출 필요 없었다.   있는 대로 골라서 크기대로 꿰매어도 멋들어진 보자기가 만들어져 나왔다.   당장의 쓰임도 생각할 필요 없었다.   만드는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조각을 이어 나가면 장수를 축원한다는 뜻이 자연이 더해졌다.   

보자기
출처: Pinterest(Manon Bertrand)

   보자기는 물건들을 싸거나 덮어 보호하는 것으로 사용했으며, 천을 이어 붙이거나 수를 놓아 장식하였다.   옛 문헌에서 보자기가 복(福), 보(褓) 등으로 쓰여 있고, 보자기의 어원을 보자의(褓子衣)에서 보자기(褓子器)로 전의 되었다고 추정한다.   보자기에 싸두는 내용물을 복에 비유하여 복을 싸두면 복이 간직된다는 민간 신앙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인 용도는 덮거나, 싸거나, 가리거나, 받치거나, 장식하거나, 상징적인 것 등 다양하다.   우리 선조들의 천지인(天地人) 사상, 인간을 모든 만물의 근본인 하늘과 만물을 탄생하게 하는 땅 사이의 소산으로 여겼으며 인간의 복락을 다복(多福), 다수(多壽), 다자손(多子孫) 삼다 신앙을 형성했다.   보자기의 제작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각보의 크게 두 가지의 색채로 구분되며 사와 모시를 사용한 조각보는 파스텔톤 색상으로 은은하며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그 반면에 명주를 사용한 조각보에는 오방색을 이용하여 중앙에는 양(陽)의 색상인 황. 청. 홍을 많이 사용하였다.   명주나 모시 또는 무명실로 송송 구멍이 나게 짠 여름 옷감을 항라(亢羅)라고 한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항라가 바로 이것이다.   항라 조각은 홑 보를 만드는 천 조각으로 제격이었다.   이 오색 항라 조각보는 바느질 자국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두드러지게 실올이 박힌 양을 보여주어 보자기가 단순히 천 조각만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만든 이의 창조물임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조각보를 통해 오방색에 관한 단순하지만 추상적인 구성의 아름다움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조각보에서의 색채 구성은 단순히 오방색의 실현이라는 가치뿐 아니라, 추상적 구성으로 현대적 미감의 회화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참고 문헌

1)  최성자, <<한국의 미 선 색 형>>, 지식산업사, 1993

2)  라연신, <색채를 통한 한국 이미지의 표현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0

3)  노은희, <조선시대 보자기의 색채 분포와 배색의 측정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6

4)  배민경, <음양오행을 통한 오방색 표현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7

'문화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21) 2024.09.02
몽유도원도(夢遊挑源圖)  (16) 2024.09.02
색동한복  (0) 2024.08.20
음양오행에 의한 오방색  (0) 2024.08.20
오방색(五放色)의 이론적 배경  (1)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