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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미인도(美人圖)

   신윤복(申潤福, 1758~1813)은 조선 후기 일상 속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풍속화가로 유명하다.   화원이던 부친 신한평(申漢枰)의 뒤를 이어 화원 화가가 되었고, 어진을 여러 차례 그리기도 하였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머리에 커다란 가체를 얹고 두 손으로 마노(瑪瑙) 노리개를 만지며, 갸름한 얼굴에 가는 눈썹, 작고 붉은 입술, 10대 후반 여성의 모습을 아름답고 섬세하며 세련되게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미인도
출처: 신윤복, 비단에 채색, 114x45.5cm 간송미술관

   저고리 깃과 겨드랑이에 짙은 자주색 선을 대고, 쪽빛 소매 끝단으로 삼회장저고리에 쪽빛 치마를 입었다.   저고리는 살짝 몸의 윤곽이 드러나며 살짝 무거워 보이는 가체를 하고 있다.   당시 가체는 매우 비쌌으며 가난한 백성은 가체를 마련하지 못해 혼인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사치가 심해지자 정조가 가체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유교 문화의 조선시대는 여색을 멀리하고 욕망을 억제하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분위기로 여염집 규수가 외간 남자 앞에서 얼굴을 드러 낼 수 없었다.   지체 높은 양반집 여인이 낮은 신분의 화공에게 얼굴을 보이면서 초상화를 그릴 수 없었으며, 이 그림의 주인공은 남자들과 좀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던 기생일 것으로 추측한다.   기생들은 기방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노래와 춤으로 유흥을 즐겼으며, 그 중 시서화에도 조회가 깊은 기생도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은 기방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으나 주로 연회에서 기생과의 교류를 가졌다. 

 

   이 그림은 기방을 드나들던 누군가가 이 기생을 화가에게 그리게 했거나, 화가 자신이 사랑하던 기생을 그린 것 일 수도 있다.   신윤복은 그림 한쪽에 아름다운 필체로 "화가의 마음에서 만 가지 봄기운이 일어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 낸다"가 쓰여있다.   미인도는 단순히 외모를 표현하는데만 그친 그림이 아니라,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여성을 그린 작품으로 정숙하고, 단아하고, 고요한 당시의 미적 기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1)   조인수, <<군자의 삶, 그림으로 배우다>>, 다렛수레,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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